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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연 칼럼-우리가 모르고있는 종교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1.09.30 13:06 수정 2021.09.30 01:06

조덕연 칼럼-우리가 모르고있는 종교
 
ⓒ 부안서림신문 
종교란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모든 동물은 먹거리에 탐닉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은 다르다. 의식주 해결로 만족하지 않고 초월의 세계를 찾는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특성이다. 성서신학의 최고 권위자인 정양모(86) 신부의 말이다. 그는 독일에서 7년, 프랑스에서 3년 공부한 베테랑으로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아람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 능통하며 광주 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의식주가 채워져도 왜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는가? 인간은 원래 유한의 존재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존재 그래서 배부르고 등 따신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유한성을 넘어서고자 한다. 인간은 초월성을 찾는 동물로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모두 중동에서 태동한다. 중동의 사막에서 태어난 종교는 예외없이 유일신의 계시를 받는 계시종교다. 사막은 메마른 곳이다. 사람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곳으로 스스로 인생을 감당하기가 거의 불가능한곳이다. 그래서 초월자를 찾는다. 그들이 찾는 초월자는 유일신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유일신에게 가는길은 오직 한길뿐이다. 왜 한길뿐인가? 사막이라는 풍토는 광활한 땅에서 사람이 살수 있는곳은 오아시스뿐이다. 물이 솟아나는 오아시스 하나뿐인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또한 하나뿐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생명의 길은 오로지 하나라는 걸 확신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초월자도 한분, 초월자에게 인도하는 구세주도 한분, 예언자도 한분 그 대표적 종교가 유대교다. 그의 아들뻘 되는 그리스도교, 손자뻘 되는 이슬람교 모두 사막의 종교다. 동양의 종교는 다르다. 평야에서는 사람이 사는데 사막처럼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먹거리가 풍부하여 사람이이 살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그래서 먹고 살 걱정없이 초월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초월성의 진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종교는 인생에 대한 이치와 법칙을 찾아 나서는 이법(理法)의 종교다. 평원지역의 대표적 종교는 불교, 유교, 도교로 동양의 3대 종교다. 이 지역은 신이라는 개념이 다신주의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당초 힌두교 지역이다. 인도에는 신의 숫자가 인도인구 12억보다 더 많은 곳이다. 인도의 신전에는 그 안과 밖에 수많은 신상이 모셔져 있는데 그 숫자는 세운 사람조차 알수없을 만큼 많다. 그래서 고대 인도 사람들은 수많은 도인과 신들의 횡포에 한시도 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다. 붓다는 온갖 우글거리는 도인과 신들의 횡포에 진절머리가 났기에 “신과 도인들 다 물렀거라. 이제는 나 스스로 진리를 찾겠노라” 그래서 초월자인 신을 찾기보다 스스로 초월성을 찾은 것이다. 부처님이 찾으신 진리는 한마디로 법(法)이고 그 사상은 공(空) 즉, 비움이다. 도교는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의 신선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하는 중국의 고유 토착신앙이다. 불로장생을 꾀하는 신선술과 민간종교가 결합한 토대위에 노, 장사상과 불교를 융합하여 이루어진 이른바 선교(仙敎)다(신선이되는). 2021년 우리나라 통계에 의하면, 불교 16%, 개신교 17%, 천주교 6%, 종교가 없는사람 60%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사람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도교 신봉자임을 알수있다. 음양오행설, 천문, 점을보는 무당, 사주철학, 주문을 외는 주술, 부적, 자연현상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방술, 어디 그뿐이랴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선설까지 모두가 도교의 뿌리다. 도교사상은 수많은 세월을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이 뿌리박혀있는 토속신앙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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