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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 칼럼- 소년은 없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0.08.27 20:17 수정 2020.08.27 08:17

송성섭 칼럼- 소년은 없다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부안서림신문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의 어깨위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구부정한 허리와 주름진 얼굴에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어느 때인가 소년은 이 바닷가에서 꿈을 키웠다. 진분홍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별이 쏟아지던 밤, 달빛 출렁이던 바닷가에 앉아 인어 소녀를 그리며 소년은 별을 헤이고 있었다. 벌거숭이 소년은 바다에 풍덩 헤엄을 치다가 나른한 몸을 누이고 솜처럼 부드럽게 부푼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꿈을 키웠다. 그 소년은 이제 간 곳이 없고 기력 없는 노인 하나 하염없이 지나간 세월을 더듬고 있다. 세월은 그렇게 강물처럼 흘러간다. 흐르는 세월은 잡을수도 없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물처럼 새고 말았다. 세월처럼 무서운것이 또 있으랴. 청춘도 사랑도 인생도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한때는 젊음의 광기로 방황도 했고 사랑의 열병을 앓는 때도 있었다. 옛날 유대 왕 다윗은 보석 세공사에게 반지를 주문하면서 “승전의 기쁨이 넘 질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게 할 문장을 새겨 넣어라”고 주문했다. 이에 세공사는 왕자 솔로몬에게 물으니 솔로몬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주었다. 모든것은 지나가는 것이다. 망각의 풍화속에 잊고 싶은 세월도 있지만 지나가는 세월 속의 모든것은 퇴색하고 종말이 오고 마는 것이다. 흐르는것이 어디 강 물 뿐이랴. 저녁바람에 스치우는 한조각 구름같이 세월은 흐르고 청춘도 사랑도 덧없이 가고 만다. 어느 시인도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갔네’라고 노래했다. 인생의 무상함을 일러 무엇 하랴. 우리 사는 세상은 인연과 인연으로 맺어 진다. 세상에는 악연도 있고 필연도 있다. 불자들이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우리는 그 인연으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살고 있다. 옛말에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백리를 가며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했다. 어디 사람의 향기가 만리만 가겠는가. 사람의 인품에서 나오는 향기는 겸(謙)과 덕(德)으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가치 덕목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한다. 특히 노욕은 추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모든것을 비워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무거운 짐을 벗어 놓고 비움의 철학을 생각할 때이다. 시들어 가는 인생의 고개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뒤돌아본다. 하루가 저무는 저녁노을이 금이 간 얼굴에 젖어 들고, 빛바래인 눈동자엔 물안개가 자욱하구나. 금세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린 거리를 지나 지팡이에 의지하여 나의 누옥을 찾아간다. 꿈을 꾸던 바닷가 소년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저녁 바람의 한조각 구름처럼 스치고 지나간 지난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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