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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우리마을 유래

진서면 원암(元岩)마을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0.06.11 16:00 수정 2020.06.11 04:00

진서면 원암(元岩)마을
ⓒ 부안서림신문
↑↑ 이장 박미자 씨
ⓒ 부안서림신문
↑↑ 부녀회장 김숙자 씨
ⓒ 부안서림신문
부안군 진서면(면장 김문갑)석포리 원암마을(이장 박미자, 부녀회장 김숙자)은 진서면사무소에서 북쪽으로 5㎞에 위치한 산간마을이다. 원암의 연혁은 마을의 서쪽 골짜기인 서당골에 있었던 3기의 지석묘(고인돌)로 보아 선사시대 호족들로부터 맥락을 이어온 것으로 보이나 문헌에는 없어 확인할 수 가 없다. 이 지석묘 또한 1970년대 소하천 공사에 사용하므로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수가 없다. 하지만 예부터 이 마을은 ‘샘물이 깊어 물이 마르지않고 나무뿌리가 깊이 뻗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을임엔 분명하다. 이곳에는 조선조 숙종 때부터 다수 사람이 모여들어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의 형태를 살펴보면 동쪽에는 남산 지네봉이 있고 서쪽에는 매봉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황해의 물결이 출렁이고, 북쪽으로는 세봉(일명 관음봉)이 우뚝 솟아 내소사와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산야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마을의 전경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을 뒤 주령에 자라가 바다를 향하여 내려오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큰 자라 원(黿)자 바위 암(巖)자를 써서 ‘원암’이라 했다한다. 그러나 이 마을의 땅은 지하 2m 이하는 모두 바위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조선조 말 행정편의상 한자어를 쉽게 줄여 지금의 한자어를 써 원암(元岩)이라 하였다 한다. 원암에서 직소폭포로 가는 도중에 재백이고개 있다. 이 고개에 얽힌 전설은 조선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부안 변산반도를 순회하던 중 변산의 월명암에서 전(갈치뱀)을 잡아먹었단다. 이 뱀을 먹으면 세상 이치에 통달하게 되는데 이서구가 땅을 먼저 보아 지리에 밝은 지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서구가 하산길에 지금의 원암마을 뒷산 재백이고개(옛날 나라에 가뭄이 들면 전라도백이 이 재백이 고개를 넘어 직소폭포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고 넘나들었던 고개로 재상들이 쉬었다는 뜻)에서 잠시 쉬면서 마을을 굽어보니 앞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자라형 이었단다. 이 바위가 노출되면 재앙을 가져올 형세라하여 이 바위를 가리기 위해 바위 주위에 소나무 100여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6․25 전쟁시 거의 도벌되고 지금은 10여 그루만 남아 있다. 이 재백이 고개는 원님이 넘어간 고개라 하여 원바위재라고도 하며 특히 여름철이면 내변산 직소폭포, 월명암 등을 찾는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원암마을은 전경이 아름답고 살기좋은 마을로 소문이 자자했던데다 유학사문(儒學斯文)의 교양을 이어받아 주민들의 성품이 순박하여 1960년대는 137가구 6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다. 청장년의 도시진출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마을 이장인 박미자(58)씨와 부녀회장 김숙자(65)씨를 주축으로 97가구 160여명의 주민들이 인정을 베풀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의 ‘가족같은 동네분위기 만들기’에 힘입어 귀촌 가구만도 27가구에 이르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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