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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 회상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0.02.26 16:37 수정 2020.02.26 04:37

송성섭칼럼- 회상
 
ⓒ 부안서림신문 
달이 가고 해가 가니 세월은 유수와 같고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으니 쌓이는 회한속에 인생은 저물어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들 하지만 거동이 활발치 못하고 불편한 육신은 세월의 무게에 찌들고 말았다. 설이 코앞에 다가온 어느 날, 경자년이 밝아오고 나잇살은 더 먹는다는 의미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찬바람 속에 길가 쉼터에 앉아 지나간 세월을 기억을 되짚어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앙상한 나무가지도 봄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노쇠한 육신은 하루의 안일이 걱정인 신세 이다. 내고향 위도에서 어릴적 설이 오면 그저 즐겁기만 했다. 설빔을 바라보며 손꼽아 기다리는 기억이 엊그제만 같다. 섬마을 선주 집 마당에는 오색기와 봉기가 하늬바람에 펄럭이고 고샅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독해서 염장한 조기와 병어 덕자 등을 건져 널고, 잔저리를 물에 불려 손질하고 나물감을 다듬고 떡을 찌고 조청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돼지를 잡은 날은 침을 삼키며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 장남감이 없고 귀했을 때 돼지 오줌보를 풍선처럼 부풀리면 놀이감으로 그만 이었다. 돼지 목살 부위를 항정이라 하는데 그 부위의 비계와 생간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걸친 또수 아저씨는 불그레한 얼굴로 고기를 들고 집으로 가면서 흥타령한 가락에 신이 절로 났다. 뒷장불 중선배에서는 고사를 끝낸 화장들이 치는 북소리가 고저의 장단을 맞추어 바닷가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성긴 눈발 속에 찬바람이 불어도 콧물을 흘리며 추운 줄도 모르고 앞뒤 장불에서 뛰놀던 그 시절이 꿈길인양 아득하기만 하다.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 기억의 저편에서 아우성으로 다가와 마음을 보채일때면 나는 눈을 감고 그날을 잊지 못해 기억의 편린들을 주워 모은다. 팽나무가 있고 도깨비가 사는 마을, 주름진 할머니와 고운 어머니가 있던 그날은 가고 저무는 날을 바라보며 슬픔에 젖어 있다. 섣달그믐 밤이면 먼저 간 지아비를 그리며 숨죽여 통곡하던 여인의 울음소리가 간장을 애이도록 애처롭게 들리곤 했다. 온갖 귀신이 발동한다는 그믐밤 사내들은 산마루에 올라 귀신불이 모여드는 두멍골을 보고 풍 어를 점치기도 했다. 초사흘쯤이면 구렁 바위나 낭끝에서 수중고혼이 된 지아비 혼백을 부르는 용왕굿이 당골래의 징소리와 슬픈 곡소리가 하늬바람을 타고 마을까지 전해 오기도 했다. 저자 거리에서는 굿판이 한창 어우러져 어깨춤을 들썩이게 하였고 세배꾼이 몰릴 때면 어머니는 세배상을 차리느라 분주하기만 했다. 이제는 지난날의 추억들이고 잃어버린 날들이며 다시 오지 못할 가고픈 날들이다. 꿈에서 깨어난 듯 주위를 둘러보니 자동차 불빛만 명멸하고 저녁 찬바람에 한기가 오싹하다. 도시의 하늘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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