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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고향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9.08.28 16:21 수정 2019.08.28 04:21

송성섭칼럼-고향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부안서림신문 
고향은 어머니 품 속 같이 포근한 곳이기에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를 그리 듯 고향을 잊지 못해 합니다. 늘그막에 찾아온 고향은 인심도 변하고, 옛 뛰놀던 고샅도 변하고, 귀신이 나온다는 팽나무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낯선 거리 낯선 동네에 찾아온 느낌입니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 낳은 고향쪽에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어찌 고향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곳, 거기, 고향 땅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연두 빛이던 잎새들은 짙은 푸르름으로 변하고 올해도 반년이 훌쩍 넘어 갔습니다. 나의 문밖은 적막하고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허전한 날들입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바람에 젖으며 바닷가에 앉아 오래도록 생각이 깊어집니다. 쉼없이 밀려 온 파도가 핥고 간 바닷가 장불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사랑과 인생을 얘기하던 그 바닷가. 그립고 정다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뼛속까지 스미는 외로움에 물먹은 솜처럼 마음이 무겁습니다. 여름이면 앞 장불에는 깨복쟁이로 뛰 놀던 동무들, 봄에는 삐비를 뽑고 고수와 찔레 순을 꺾던 천진 했던 시절, 이제는 불러도 대답없는 무정한 사람들. 나는 철지난 빈 들판에 떨고 있는 허수아비 꼬락서니가 되어 처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청명한 밤 외로움을 달래며 바닷가에 나갑니다. 별과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는 예전과 다름없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때로는 이승을 등지거나 고향을 떠났습니다. 나는 한때 젖뗀 아기처럼 고향이 그리워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채였던가. 그 곳에는 그리운 어머니와 정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향수병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조숙한 나는 십여년 연상이나 서너살 윗분들과 잘 어울렸고 그분들은 나를 어여삐 여겼습니다. 떠나가 없는 그들이기에 더욱 보고파집니다. 언젠인가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 추억은 아우성으로 다가오고 나는 외로움에 떨고 있습니다. 말쟁이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 숫자가 사람을 어눌하게 하고, 허리는 굽어 걸음발이 활발치 못하며, 검은머리는 파뿌리가 되고, 얼굴은 금이가고, 침침한 눈, 빠진 이, 어느 한곳 성한데 없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간다’고 말을 하지만 너무 익으면 속이 곯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번 왔다 가야 하는 길이 인생입니다. 저 산위의 청천했던 소나무도 고사목이 되어 서 있습니다. 잃어버린 추억의 조각들을 모으며 고향의 옛 그림자를 생각하니 슬픔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오늘도 나 혼자가 되었습니다. 낯선 거리에 서서 당나라 현종 때 ‘시인 하지장’의 싯구가 떠오릅니다. ‘젊어서 고향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 시골 사투리는 변함없으되 머리털만 희였구나 /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다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어데서 온 나그네냐고 묻네’ 바람처럼 흘러간 세월 뉘라서 막을 수 있으리오. 지난일이 까마득한 옛 일이 되었구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로다’ 노래의 가사같이 그리던 고향의 모습은 아니지만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고향의 불씨가 살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내 청춘이 묻힌 고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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