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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그리움의 세월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3.03.29 20:40 수정 2013.03.29 08:40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아내의 고희를 맞아 강원도 고성의 한 콘도에 2박3일 일정으로 여장을 풀었다. 아이들이 제 어미의 생일에 즈음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성화에 계획 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폭풍주의보가 내린 기상예보대로 아직 겨울이 머문 자리엔 바람은 칼끝처럼 매서웠다. 창밖을 보니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등을 켠 체 닻을 내리고 백사장에는 허연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강변을 훑고 있었다. 밤이 되니 바람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파도소리가 요란하다. 내 고향 겨울 바닷가 파도처럼 그렇게 닮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다. 머언 전설처럼 고향의 추억들이 기억의 뒤안길에서 빛바랜 흑백 사진 같이 얼핏얼핏 스치고 지나간다. 아득하기도 하고 어제인 것도 같은 기억의 편린들……. 소년은 바닷가 별을 보며 푸르른 꿈을 꾸며 자랐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세월은 흘러 노인이 되었다. 꿈은 산산이 조각이 나고 젊은 날의 열정과 욕망은 바람처럼 흩어지고 쇠잔하고 초라한 육신만 남았을 뿐이다. 세상에 왔다가 남긴 것 하나 없다. 출세하여 명예를 얻은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재산을 모은 것도 없다. 다만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 사이엔 딸내미 둘과 아들 하나를 남겼을 뿐이다. 신산한 삶과 고달픈 생활 속에서 자식을 키우고 이제 그들이 자라 제짝을 찾아 우리의 품을 떠났다. 세월은 흘러 곤때가신 아내의 얼굴도 금이 가고 내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다. 무상한 인생이고 덧없는 인생길이다. 청춘은 저녁바람에 스치우는 한조각 구름처럼 순간이었다. 한바탕 꿈같은 세월이 흐른 뒤 후회가 가슴에 한이 되어 남은들 이제 한줌의 허무일 뿐이다. 세월의 청춘이 살처럼 그렇게 빨리 가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가슴앓이를 하고 울화증으로 간장이 녹은들 황혼도 저물면 어느 저녁에 나는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인생이 아니던가. 철은 늦게 들고 생각은 지난 뒤에 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살을 부비고 살아온 아내에게 많은 허물과 죄를 짓고 살아왔다, 젊은 날은 방종과 방황으로 살림살이도 가족도 돌보지 않고 떠돌아 다녔고 늘그막 까지 게으르고 괴팍한 이기적 성격으로 지금까지 아내의 속을 썩이며 살아왔다. 앞서고 뒤서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사람의 운명일줄 알지만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조금은 살갑게 정답게 아내를 아끼고자 작심해 본다.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 부부의 인연으로 만난 소중함을 무엇에 비기랴. 부부로 만나 해로동혈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나의 바람일 뿐이다. 못난 남정네를 만나 고생만 하고 고단한 삶에 찌들어 꺼칠한 잠든 아내를 보니 뭉클 참회의 마음이 솟는다. 지난 연말 친구들 모임에 서울을 갔다 오더니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추워서 그런지 밍크코트를 많이 입었더라고 지나는 말로 하였지만 아내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했으랴. 모피코트 야 호사에 넘치고 넘친 사람들의 호강에 겨운 치례이고 우리네에겐 꿈같은 얘기이다. 이제껏 따뜻한 옷 한 벌 해주지 못한 못나고 무능한 남편이지만 한 번도 짜증이나 투정을 해보지 못한 순한 아내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삐까번쩍하여도 나는 시답지 않게 빈자의 행복이나 뇌이는 자기기만 속에 사는 슬픈 어릿광대였다. 창밖을 보니 바람은 세차도 보름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멀리 외로운 섬 하나 파도 속에 몸을 맡긴 체 떠나갈듯 떠밀릴 듯 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는 섬을 닮아간다. 세상은 뒤죽박죽 요지경 속이고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는 하나마나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병역문제·위장전입·부동산 투기·탈세·논문표절은 이제 고전이 된 항목이고 그들의 부와 비리는 평준화가 되었다. 전관예우·로비스트 같은 새로운 항목이 등장하면서 우리들 가슴은 무너지는 담벼락을 안고 쓰러지고 있다. 사람의 값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는 판 속에서 도덕은 교과서에나 찾아볼 수 있고 도덕을 말하는 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복날 개 값 보다 못한 우리네 힘없는 자의 신세가 삶의 질을 운운하는 것조차 송아지 하품하는 격이다. 아! 세상의 어두움이여 찬란함이여. 죽는 놈 벽차기 하는 신세가 오죽 가슴 쓰리고 참담함이랴. 뭐 묻은 놈이나 뭐 묻은 놈이나 오십보백보 차이이고 능력의 잣대가 돈 번 자가 우선인 세상에서 염치 불구하고 그들의 버티기 작전은 또한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느자구 없이 하나 마나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자신이 더욱 초라하고 풀잎처럼 죽는 자들은 눈을 감지 못한다. 꽃피는 봄날은 멀기만 하고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뒤엄이 된 속으로 이레 저레 오늘 밤은 뜬 눈으로 지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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