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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당숙모 길 찾듯이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5.10 09:51 수정 2012.05.10 09:51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디지털 부안일보 
한적한 휴일 반가운 전화 한통을 받는다. 오래토록 그리웠던 친구가 점심을 함께하자한다. 반가운 마음에 장소를 약속한다. 바다가 있고 풍경이 있는곳이 좋을 듯싶어 의논 끝에 산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하고 한걸음에 달려가니 함께온 친구들 모두 반갑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말이 많다. 수다스럽게 때로는 익살맞게 시간을 보내니 부담이 없으면서도 즐거움은 끝이없다. 60이 넘은 초로의 나이에 누릴수 있는 복이리라. 세상사 걱정할것 없고 지금 이순간이 마음 편하니 모두가 편한 것이다. 행복이 바로 지금이고 천국이 바로 이곳인 듯싶다. 시골에서 구차하게 태어나 어렵게 가정이루고 각고의 고통을 이겨냈으니 지금의 복을 누릴 수 있어 좋다는 것이 한결같은 이야기 이고 보니 이야기는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는듯 싶다. 한 친구는 창과 가락에 취미를 느껴 열중하다보니 자주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하여 주위의 양해를 구한 후 한가락 청해들으니 오신손님 모두모여 환호하는 덕에 그 친구 두곡은 더 불러야 했다. 명창의 솜씨임에 틀림없다. 한 친구는 자산관리에 능하여 재산이 늘어나고 있다 자랑이다. 만나는 자리의 술과 밥값은 걱정말라한다. 오랜시간 덕담과 서로의 칭찬에 시간을 보내는 중 한 친구가 제안한다. 헤어지기 아쉬우니 대부도에 가서 한잔더 하잔다. 모두의 바람속에 우리는 대부도를 향한다. 친구찾아 가는 것이다. 차로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다. 네명의 친구중 한 친구만이 가봐서 아는 길이다. 앞좌석에 앉아 길안내를 하는 친구의 말에따라 처음가는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것이다. 차안은 시끌 벅적이다. 노래와 익살 덕분이다. 길이멀어 가는도중에 어둠이 깔린다. 출발한지 세시간이 넘어 도착할 시간인데도 차는 달리고있다. 길안내자의 눈가늠으로 가는길이 어둠이 깔렸으니 헤메일수 밖에 없는것이다. 주소도 모르지 한번 가본 길을 자신있다 하기에 믿은것이 착오였다. 우리당숙모 길 찾듯이 한것이 당숙모에는 미치지 못한듯싶다. 지금부터 40여년전 일이다. 서울에 있는 아들집에 가시는 당숙모를 따라 난생처음인 서울길을 동행 한다. 형님께서 내가 보고싶으니 함께오라는 전갈을 받고 따라 나선것이다. 완행열차에 몸을싣고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고불고불 다닥다닥 복잡하기만한 길을 당숙모의 가늠자에 맞추어 가고 있는것이다. 당숙모의 길찾는 더듬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더욱이 신기한것은 길 안내자는 낫놓고 ‘ㄱ’자도 못그리고 작데기놓고 ‘1’자도 모르는 문맹이었다는 점이다. 관공서나 부자가 아니면 전화가 없을 때이고 대명천지에 눈감으면 코를 베어간다는 곳이 서울이라는데 오로지 믿는것은 당숙모의 발달된 더듬이 뿐, 그때 미아가 되지않고 지금껏 존재할수 있었음은 그시절 당숙모의 명석한 촉각 때문이었으리라. 먹고살기가 힘에겨워 배움의 길은 열리지않고 딸린식구 먹이느라 낮에는 밭일 밤에는 길삼에 밤잠 설쳐가며 보내온 평생이 있었기에 후손들은 지금 걱정없이 살고있는것이 아닌가싶다. 유명을 달리하신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오늘따라 보고싶은 정이있음은 내가 존재하도록 항상 기도해주신 당숙모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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