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석양천을 바라보며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4.07 13:17 수정 2012.04.07 01:17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싹 한기가 들어 철지난 파카를 입고 바닷가 모정에 앉아 생각이 깊어 갑니다. 섬 밤은 아직도 겨울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바다는 불빛 하나 없는 칠흑의 밤입니다. 4월이 되도록 이상기온 탓인지 어장이 형성되지 않는 적막의 바다입니다. 일년여 만에 고향의 누옥에 찾아들어 몸과 마음을 쉬고 있습니다. 지난여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실에서 몇 개월을 보내고 정기검진과 통원치료를 한다고 심신이 지쳤습니다. 그 음울하고 괴로운 병실에서 창밖을 보면 한 여름 태양이 작열하던 날에 주검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 졌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은 빗물처럼 슬픔과 외로움에 젖어 주체 할 수 없는 고독의 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병실 밖을 나와 보니 가을이 그렇게 다가와 있었습니다. 물은 이파리와 한잎 두잎 저가는 낙엽을 보며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 슬프도록 곱게 물든 노을을 보며 그 노을보다 더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이 낙엽 되어 떨어지는 저물녘 왈칵 눈물이 나도록 서러웠습니다. 삭풍이 불고 분분히 흰 눈이 내리던 날, 내 육신은 남루하고 초라한 몰골로 기력을 찾지 못하고 허덕일 때 생자필멸(생명이 있는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 왔는가, 명예도 돈도 나에게는 먼 얘기였고 성실하게 살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못한 한 평생이었습니다. 덧없이 세월은 흐르고 할 일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육신과 지난날의 후회로 밤마다 회한의 날을 지새웠습니다. 그 푸르른 날에 나는 방황하며 세월이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지난날을 후회하고 한탄한들 가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인 것을 이제와 알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꿈을 안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고향의 바람과 바다가 보고 싶어 간단한 짐을 꾸려 고향을 찾았습니다. 오늘은 비가오고 소슬한 바람이 바다자락에 잔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별빛 하나 없는 밤 이슥하도록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물새 한 마리 처량히 울고 갑니다. 꿈 많던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어 가능했던 많은 날들을 허망하게 보내고 쌓이는 회한을 삽질하는가. 오지 않을 날 지나간 날을 가슴 치며 후회하는가.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고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잡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보낼 수 있는 것은 보내야 합니다. 떠나는 것도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가지려는 것도, 놓지 못하는 것도, 안달하는 것도, 노욕에 불과한 것입니다. 젊은 날의 열정은 아름답고 집착과 욕망은 성취욕이었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입니다. 모든 잡다한 끈을 놓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마지막 인생의 가치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가난한 자에게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의 재산입니다. 하루해가 지는 석양천을 바라보며 인생을 뒤돌아봅니다. 지난겨울 죽은 것은 죽고 산 것은 다시 살아나는 계절입니다. 누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가.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인간은 한 발짝 더 가까이 주검 앞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평생을 살면서 인생에 대한 고뇌와 회한이 없을 수 있겠는가만 젊은 날을 탄진한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한이 되고 서러워 뼈저리게 뼈가 저리게 아파 옵니다. 사는 날이 얼마 될까 얼마 남지 않으리라 나는 짐작 합니다. 이제라도 면진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오늘 밤은 바닷가 비바람이 몹시 차갑습니다.


저작권자 부안서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