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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무지개원리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3.13 21:25 수정 2012.03.13 09:28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디지털 부안일보 
한 어린이가 네댓명의 아이들 과 신나게 놀고있다. 나이가 많은 동네 형들과 누나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기에 다섯 살짜리 어린이는 그중의 대장이다. 초막 돼지우리 옆에서 딱지 치기도하고 양지바른 볏짚 울타리에 기대어 놀다가 점심때가 되자 각자 자기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간후 어린이들이 놀았던 장소에서 불이났다. 돼지우리는 이미 다 타버리고 불길은 본채 지붕으로 번져가고 있다. 동네사람들은 부랴부랴 물을 퍼 날라 불은 가까스로 진화 되었으나 방화범을 색출 하는데 조금전 함께 놀았던 어린이들 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그중에 나이가 많은 다섯 살짜리 왕초의 짓이라 지목하니 그 어린이 방방 뛰며 아니라고 주장 해보지만 어른들은 들은척도 하지않고 방화범으로 몰아버리고 만다. 억울하고 분해서 돌아 버릴것 같았지만 참는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무지개 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가 느꼈던 최초의 분노였다. 화가 치밀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별별 방법을 써보아도 풀리지 않으니 말이다. 저자의 말은 간단하다. 화낼 일을 만들지 않는게 상책이라고, 화낼 일을 만드는것은 주변에서 시키는 일이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 하는것은 잘못된 착각 이라고 이른다. 화는 내 스스로 내 마음에 끌어들여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화나게 하는 행동을 한다 가정해보자. 욕설, 폭행, 사기, 모독, 멍청한 행동 등……. 상대의 행동 때문에 화를 내고 분노하고 속을 끓이고 하다보면 건강이 나빠지고 엄청난 손해가 뒤따른다. 고로 분노 또는 화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애초부터 막아버려야 한다고 저자는 이른다. 욕도 잘먹고 구박도 잘 견디고 안티들도 미워하지 않고 좋지안은 이야기를 들어도 잠을 잘자고 “아무리 그래봐라 그것보다 내행복과 평화가 더 중요하다, 나는 이 두가지를 천하의 무엇과도 안 바꿀란다” 차동엽 신부에게 무지개 원리를 가르쳐준 사람은 소크라데스라 한다. 소크라데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때 제자들이 찾아와서 통곡하며 말했다. “스승님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죄도 짓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감옥에 갇히시다니요. 이렇게 원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크라데스 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제자들을 달랬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꼭 죄를 짓고 감옥에 왔어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하루는 소크라데스의 친구가 찾아와 다급하게 큰소리로 호들갑을 떤다. “여보게 소크라데스! 세상에 이럴수가 있나 방금 내가 밖에서 무슨말을 들었는지 아나? 아마 자네도 들으면 깜짝 놀랄걸세” 소크라데스는 친구의 말을 막으며 말을한다. “자네가 지금 전하려는 내용이 사실 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는가? 사실은 아니더라도 선의에서 나온 말임을 입증할수 있는가? 아니면 자네를 그토록 흥분하게 만든 그 이야기가 정말 중요한 내용인가? 사실도 아니고, 선의에서 비롯된 마음에서도 아니고, 더구나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면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네. 그런말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화를 자주낸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보면 그냥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칠 일도 순간적으로 욕설을 뱉어내기도 하고 그로인해 다투기도 한다. 또한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끼어들어 흥분하고 그냥 지나쳐도 될 하찮은 일에도 스스로 화를 자초하여 자주 분노하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그 화가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지개(無之開)원리가 말하고자 하는바는 내가 집착하지 않으면 매사는 스스로 풀어질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혜를 읽히며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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