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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만원의 행복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0.04.14 14:43 수정 2010.04.14 02:43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만원이 있는 날은 행복 합니다. 나는 만원이 있는 날은 행복을 조율 하고 있습니다. 만원 한 장으로는 탐탁한 책 한 권 살 수 없어 서점가를 서성이다 다른 행복을 찾아서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립니다. 거리에는 너도 나도 부안을 위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자신의 삶보다 부안을 위해 살겠다는 예비 후보자들이 앞 다투고 있으니 살맛나는 세상이 오려나 봅니다. 식상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그들 욕망의 숲길을 지나 나는 작은 행복을 찾아오라는 사람 없이 바삐 걸어갑니다. 봄이 더딘 거리. 가난한 도시의 거리도, 서산에 지는 하루해도, 나의 황혼도, 오늘은 그리 쓸쓸하지 않습니다. 행복이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지 않은가 봅니다. 나의 주머니 속에는 존경하는 세종대왕님께서 행복을 충전하고 계시니까요. 먼저 담배 한 갑을 사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거스름의 퇴계 선생께서 나를 유혹합니다. 순대 국에 탁 배기 한 사발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시장 통에는 사람의 냄새가 나고 세파에 부대껴도 건강한 삶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된 하루의 삶을 잠깐 부려놓고 세상을 안주 삼아 시름을 잊는 한때입니다. 세상도 씹고 순대도 씹고 목로주점은 푸짐하기만 합니다. 크리스찬 디올의 잠자리 안경을 걸치고 루이비통의 핸드백을 들고 피에르 가르댕의 스카프를 두르고 스카이라운지에서 값비싼 커피를 홀짝이는 사모님들이야 시장 통 아짐씨들의 때 묻은 행주치마의 내력을 알 리가 없습니다. 로랙스나 오매가 시계에 웸불리 넥타이를 목에 감고 마사로를 신고 팔등신 미인들 속에서 양주를 들이키는 있는 자들의 음탕하고 음흉한 거래가 오가는 향락보다 우리들 소박한 작은 목로주점의 한때가 더욱 행복한 것입니다. 있는 자나 가진 자를 비난 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세상은 아득한 어둠이고 아픈 상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고 달콤한 소리를 좋아 합니다. 세상살이에서 줄을 잘 타고, 꾼의 재주가 있고, 좀 나긋나긋 하고, 기미를 살펴 눈치껏 비위도 맞추고, 허리 굽혀 모시는 처세를 터득 하였다면 힘든 삶이 좀 나아 졌을까요. 미련스럽게도 그런 염치도 비위도 없는 구성없는 사내 이었습니다. 그러하니 권력에 아부하고 머리 숙여 영달을 꾀 한적 없고 가진 자에게 아첨하고 의존 한적 없는 평생을 가난하고 게으른 변두리 인생 이였습니다. 나도 황금보기를 돌로 여기지 않고 황금을 좋아 하고 영달의 욕심을 마다할리 없지만 구차하게 구걸 하느니 자랑은 아니지만 나 물 먹고 물 마시는 선인의 심정이고 싶었습니다. 고고함도 아니고 허세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의 채찍 이였을 따름입니다. 그 처철 한 자존 때문에 비굴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개처럼 헐떡이는 탐욕을 외면 한체 살아 갈 수 있었고 나를 지탱 할 수 있었던 힘이 엇습니다. 버려도 개도 주워 먹지 않을 자존 때문에 괴로움과 외로움 속에 살아온 날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약간만 비겁해지면 행복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비굴과 아첨으로 얻은 굴욕의 대가가 행복 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가난하지만 얽매이지 않는 삶에 자족 합니다. 만원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마음이 즐겁습니다. 어스름에 도시의 불빛이 밝아 옵니다. 나는 집에 오는 길목 길가 쉼터에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촛불에 심지가 타들어 가듯 나의 생의 심지도 얼마 남지 안 했습니다. 벅차던 청춘이 가버린 오늘 초라한 행복이라 일러도 좋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인연으로 만나 그리운 얼굴들이 보고 싶은 저녁입니다. 올려다보니 초저녁 초롱초롱한 별 하나 자꾸 흐려집니다. 봄날 피었다 지는 풀꽃 같은 인생입니다. 그래도 나는 이봄 한그루의 나무를 심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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