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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눈 내리던 날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09.12.29 21:37 수정 2009.12.29 09:42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바람이 차갑고 하늘은 잿빛으로 내려 안더니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다. 생장 같은 콘크리트 울안 아파트 창가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하잘 것 없는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신종플루라는 병이 크게 유행하고, 나는 지병으로 고위험 군에 속한다니 겁이 나서 날씨가 궂은 날은 바깥나들이를 삼가 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니 미끄러운 눈길을 어기적거리며 걷는 것도 꼴 볼견이니 작정하고 창가에 의자를 갖다 놓고 분분히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저 깊은 마음의 뒤안길을 돌아 추억의 한 자락을 펼쳐 본다. 올해도 저물어 간다. 무심한 세월에 무심한 창밖을 보며 시린 계절처럼 가슴이 얼고 있다. 세월에 따라 인생도 저물고 우리들 사랑도 저물어 갔다. 푸르른 이파리 떨어져 흙이 되고 자양이 되어 침묵의 계절을 이기고 나면 앙상한 가지에도 찬란한 봄의 성찬을 마련하리니. 우리들 인생의 봄은 오지 않고 모진 삭풍이 몰아치는 조락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열정의 젊은 날. 세상이 즐거웠던 날. 가능으로 채워졌던 그날들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렸다. 눈이 내린 다. 산에도 들에도 가난한 도시에도 함박눈이 펑펑 꽃잎 되어 쏟아진다. 이런 날이면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그대를 향한 마음으로 그저 거리를 방황 했었지. 눈이 오는 날은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좋았다. 지금은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목로주점 인심 좋은 나이 지긋한 아낙의 입담이며 우설(牛舌) 한 점에 다모토리는 가난한 시인의 마음이었다. 시장 통 어느 길모퉁이 개장국 집의 설구(雪拘)는 주객들의 입맛을 돋우었고, 사람 냄새 나는 후덕한 인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이슥한 밤 포장마차의 참새구이 어묵 한 접시도 구미를 당기게 하였다. 젊은 날 한 잔의 술은 낭만이며 멋이었고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촉매제요, 젊음을 윤활케 하는 활력소 였다. 멋도 맛도 없이 퍼마시는 요즘 사람들의 그런 술이 아닌 감흥과 흥취였다. 눈이 오던 밤 고즈넉한 그 밤. 처마 끝에서 푸석푸석 눈덩이가 부서지고 등불이 평온 하던 밤. 다정한 벗님네와 밤 세워 정다웠던 밤. 유주무효(有酒無肴)면 어떠랴 마는 섬마을의 겨울 밤 안주는 상어포와 광어포가 제격이었지. 그 벗님네 한발 먼저 가고 없는 자리가 허전하고 마음 아프다. 눈이 내리면 그대와 나는 마냥 걸었지. 그저 지구 끝가지 가고 싶단 말. 그렇게 인생을 동반하고 싶었지. 그 소녀도 어느 하늘 아래에서 세월의 무게로 늙어 가고 있겠지. 떠난 사람은 떠난 대로,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눈이 오는 날에는 보고 싶어 저리도록 가슴 아프다. 홀로 외롭고 쓸쓸하다. 목 놓아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미치도록 그리운 사람이 있다. 눈보라 속 광야를 달리던 숨찬 심장의 고동이여. 이제는 폐선된 기관처럼 녹이 슬고 말았다. 눈이 오는 날은 막연히 기다렸던 사람도 가슴의 여백의 한켠을 채우고 싶었던 사람도 홀로 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모두 잊어야 한다. 모든 것에 무심하고 무관하고 싶다. 상실해가는 늙은이의 독백이다. 눈이 오는 날, 어깨가 시리도록 창밖을 보며 끊어졌다 이어지는 기억의 저편. 추억의 편린들을 반추해본다. 인생이란 여행 표를 끊은 지 어언 예순 다섯 해, 눈을 감으면 보이는가. 지난 세월이……. 밤마다 회한만 퍼 담는 생의 저녁이면 천지에 눈이 내리고 있다. 가로등 불빛 사이도 메마른 나의 가슴에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그리움이 쌓이고 있다. 눈이 오는 밤 잠 못 이룬다는 나의 말.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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