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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가을날의 연가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09.11.06 16:03 수정 2009.11.06 04:05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저기 산마루에 억새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여기 언덕에 산국의 향훈이 짙다. 바라보니 청록빛 바다가 밀리어 오고 있다. 한조각 구름이 스치우고 간 자리에 황혼녘 노을이 못 견디게 아름답다. 가을이 깊었다. 어제 밤에 노죽(露竹)이 밤새 서걱 거리더니 갈참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쓸리고 있다. 가을은 외롭고 한쪽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울지 않으리, 마음속은 강물처럼 흐르는 슬픔이 있다. 생의 저녁도, 가을날 저무는 오늘처럼 저렇게 아름답기를 바란다. 새처럼 날아간 사람들은 빈 둥지만 헐고 이 가을에 엽서 한 장 없다. 언제 다시 만나리. 우리들 만찬의 자리에서 향기로운 술잔을 기울일 날은 어두운 바람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속살 상처를 들쑤시는 아픔이다. 해가 저문 땅, 황량한 바람이 부는 곳, 저승과 이승을 잇는 노둣길이 보이는 우리들의 저녁. 가을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하나 만나보자. 만나면 가슴이 아프다고 울던 사람, 그저 손 맞잡고 바라만 보자. 밤의 허무한 허공을 가르며 날개 짓처럼 낙엽 지는 소리 들리는가. 꽃처럼 고운 이파리 그 한잎 낙엽으로 지는 생의 끝, 우리 떠나가면 어느 윤회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리. 젊은 날 애증의 고비 길에서 얼마나 돌아 괴로워했는가. 신이 새긴 문신처럼 지울 수 없는 이름이여……. 바늘 끝으로 쑤시듯 아파 오던 그대 그저 그렇게도 생각나는가. 어둠이 금방 내리고 있다. 구부정한 어깨에 스산한 바람이 스치우고 초저녁 별 하나 초롱불처럼 매달려 있다. 동네 어귀에 개 짖는 소리, 창가엔 저녁 불빛이 평온 하다. 나는 다시 바닷가에 주저앉아 생각이 깊다. 담배 연기 때문인가 눈시울이 젖어 온다. 세월이 이렇게 빠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끼고 살았어야 했다.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했다. 저녁 물새 한 마리 처량하게 울고 간다. 헤어진 사람은 그리움으로 살고 그리운 사람은 헤어져 산다. 아프도록 그리운 정을 누군들 참아내리.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가도 가슴속 그리움은 날로 자라 무성하게 자라다가 어느 가을 날 한잎 낙엽으로 흩어지면 서러움에 목매인 한 해가 저물고, 어느 하루 봄날 새싹으로 파아랗게 돋아나면 다시 그리움만 커가는 것을……. 만나면 그립던 마음에 허둥대다가 냉가슴만 앓고 말도 못하다가 헤어지는 그대 뒷모습이 그저 안타까워라. 신도 용서 하였으리, 우리의 만남을……. 한 폭의 풍경화 한음절의 선율 한구절의 시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 초록빛 사랑의 샘물은 눈이 침침한 나이에도 쉼 없이 흘러 우리들 사랑의 노래는 꽃이 되고 그 꽃 지면 별이 되리니 그대 어느 하늘 아래 이 밤별을 해 이는가. 반은 잠들고 반은 깨여 있는 꿈결에도 그대는 살며시 찾아와 우리 서로 모래성을 쌓으니 허무한 사랑 허무한 세월을 어이 할거나. 가슴 조리던 그립고 보고 싶던 날은 상처가 되어 세월 속에 묻어야 하는 것이 서럽기만 하다. 이제는 남의 지어미 지아비로 살아가면서 꺼지지 않는 가슴속 불씨하나 안고 생의 끝자락을 가나니, 윤회의 길목 그 길섶에서 다시 만나면 그저 그대 고운 볼스치고 옷섶에 스미는 바람이 되리. 녹슨 심장에도 피는 붉게 타오르고 사랑 한다는 말 한마디 꽃잎으로 저가고 아직도 신열로 떨려오는데 그대, 가을이 다하기 전 별빛 고요한 언덕에 앉아 낙엽 지는 소리 듣자. 가을이 가면 대지는 앙상히 마르고 천지에 눈이 내리면 주검보다 깊은 침묵의 계절이 오리니, 이파리 곱게 물든 에움길에서 종언을 고하는 낙엽의 소리. 우리들의 가을을 보내자.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한쪽 허물어진 마음으로 살았어라. 가슴이 아파도 마음이 서러워도 그리운 사람아. 옷깃 스치는 인연이듯 그렇게라도 만나보자. 이 가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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