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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 급하면 돌아가라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09.07.08 09:08 수정 2009.07.08 09:15

 
↑↑ 조 덕 연 서림신문 객원논설위원
ⓒ 디지털 부안일보 
어린아이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고 있다. 배냇짓 에서부터 방긋 웃는 모습, 하는 짓 모두가 신비다. 기어 다니고 이가 나고 커가는 모습이 부모에게는 기쁨이고 생활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신이내린 선물이다. 그러던 아이가 걸어 다니고 말을 시작하면서 어른에게 반하는 돌출행위가 시작된다. 어른들의 상식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돌발 행위와 고집에 황당하기만 하다. 세살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에 준하여 버릇을 고치기 위해 체벌을 가한다. 힘으로 강제하겠다는 뜻이다. 아이는 더욱 과격해진다. 소리 지르고 물건을 흩트리고 마지막 저항은 울음이다. 꼬옥 안아도 주고 그러면 안된다는 걸 가슴으로 전달될 때 아이는 웃으면서 적응해 나간다. 판단이 안되는 어린이의 버릇도 강제로는 고쳐지지 않는다. 버르장머리 고치려다 아이의 성격만 사납게 만들고 만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어린아이 이거나 어른이거나 지식인이거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음대로 하고픈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의지가 공공생활에 반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나중의 문제다. 우선 내가 불편하기에 타인의 방해를 싫어하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나라밖에서는 잘못하는 대통령 물러나라는 이란이 그렇고 아웅산 수지여사를 석방하라고 외쳐대는 미얀마도 그렇고 핵과 미사일로 코웃음을 치는 미국의 콧구멍을 간지럽히고 있는 북한이 그렇다. 나라 안에서는 내우외한으로 더욱 혼란이다. 미국에게는 콧구멍 간지럽히는 일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북한은 코앞에 닥친 위기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전쟁을 선포하고 시민단체나 지식인들은 시국선언을 하고 대학생과 종교인들이 한목소리로 이렇게는 안된다고 하니 조용할 날이 없다. 이를 일사분란하게 강제 해산할 수 있다면 우선은 빨라서 좋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강제로는 해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인간은 모두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약한자의 편에 강하기 때문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짓눌리는 모습을 보고 피가 거꾸로 서지 않는다면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먼저 이해를 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 따르지 않느냐 보다는 왜 따르지 않는가가 중요하다. 극장에서 일이다. 영화를 보려니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두번째 줄에서 일어나니 따라서 모두 일어서고 만다. 너도 나도 서다 보니 결국은 모두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극장은 앞좌석을 낮추고 뒷좌석은 높게한다. 모두가 편안하게 앉아서 자유롭게 즐길수 있어 좋다. 한 거리에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다. 내 가게를 고객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간판을 키운다. 모두가 따라 키우다 보니 효과는 없고 광고판만 커진다. 생각다 못해 높이를 조절하고 색깔있는 네온등을 이용해 보지만 결과는 무질서와 낭비뿐이다. 가게 주인들은 토론한다. 규격을 정하여 깔끔하게 간판을 정비하니 모두의 마음이 편해지고 거리 또한 아름다워 장사가 잘되어 좋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이웃과 더불어 세끼 걱정하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일상이 있다면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모든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경제지상주의가 국민의 인격을 가둔다면 국민에게는 불만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버르장머리는 때려서 고쳐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 원인인가를 살펴서 방법을 달리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 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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