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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섭
서림신문 주필 |
ⓒ 디지털 부안일보 |
하늘은 높아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지난여름의 혹독한 더위가 계절에 밀려 뒤꼍으로 사라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세월이 가고 세월이 가면 인생도 간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고 오는 백발도 막을 수 없다.
피었다 지는 것도, 왔으면 가는 것도 세상의 정한 이치이다. 계절의 사계는 인간의 일생과 너무나 흡사하다. 봄은 소생과 성장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고 여름은 찬란한 햇빛 아래 왕성한 활동과 육성의 시기이며 가을은 결실과 조락의 계절이다. 겨울은 죽음과 같은 침묵의 계절이니 자연의 섭리가 우리네 인간사와 다를 바가 없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지만 노년의 계절인가 싶다. 밤새워 우는 풀벌레 소리에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다. 황혼의 노을을 바라보며 한 조각구름이 덧없이 흘러갈 때, 달 밝은 밤 뒤척이는 물결을 보며 바닷가에 앉아 깊은 상념에 잠길 때, 소슬한 바람에 낙엽이 지고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밤 창가에 앉아 밤을 지새울 때, 아무리 감정이 무디어진 사람도 한 가닥 회한과 연민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나도 엊그제 청춘이었다. 가슴을 들끓게 하는 젊음과 열정이 있었다. 어느새 세월은 살같이 흘러 기력은 쇠하고 머리는 서리가 내리고 얼굴은 금이 가고 말았다. 나는 종교도 멀리 하였고 이웃을 사랑할 줄도 몰랐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는 생의 저녁에 이르면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심판 받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국가와 국민을 사랑할 리가 없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고 간사하고 시커먼 뱃속 시류에 편승하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치국을 입에 담고 정치를 논하고 있다.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들만 횡행하는 이 땅에서 진정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 내 살붙이처럼 사랑한다면 고통과 배고픔에 지친 국민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숭고한 사랑을 실천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인류를 사랑한 사람,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사람, 그들의 위대한 사랑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희랍인들이 말한 아가페(agape)나 에로스(eros) 필리아(philia)로 구분한 사랑이 아니어도 사람과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라 세상을 사람을 아낌없이 사랑하라. 뜨거운 마음으로 다정한 손길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라.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결실과 수확의 계절이며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계절이다. 그냥 길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서녘에 부는 바람이 상큼하고 청량하다. 마당가에는 한물간 봉숭아꽃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머지않아 그 꽃잎도 져버리면 나는 더욱 쓸쓸하리라. 나는 머언 머언 추억의 뒤안길을 돌아 가을을 아프게 느끼고 있다.
윤동주의 「서시」를 생각하며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나의 생의 저녁을.
청산도 절로 절로 / 녹수도 절로 절로 / 산 절로 수 절로 / 산수간에 나도 절로 / 이중에 절로 난 몸이 / 늙기조차 절로하리
옛 선인의 시구처럼 산수간에 녹수처럼 나도 절로 티끌 없이 명징한 마음으로 가고 싶다. 우리는 언제쯤 고통과 시련의 날이 지나면 이 땅 황량한 천지에 사랑으로 가득 찬 꽃비가 내리고 축복의 땅이 되려나.
오늘은 저무는 노을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